
+ 야 단풍이다
지나가는 누구들이 무수히 입을 맞추고 가지 않은 다음에야 저리 황홀해 할 수가 있겠는가 숨이 막히도록 퍼붓는 입맞춤에 입맞춤에 혼절, 혼절, 또 혼절. (신현정·시인, 1948-)

+ 단풍 산을 넘던 무지개 산허리에 걸려 넘어진다 찢겨진 살 틈에서 핏방울이 흘러 골짜기에 고이자 나무들이 절기의 붓을 빼 들어 제 옷에 찍어 바르고 있다 윗도리부터 아랫도리까지 (김태인·시인, 1962-)

+ 단풍
앞날이 순탄치 않아 혹독하게 몰아치리라 예감하고들 있어 분기탱천한 구월이 피를 토하는 거야 (임영준·시인, 부산 출생)

+ 단풍나무 한 그루
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 죽여야겠다고 가을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,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(안도현·시인, 1961-)

+ 가을 단풍
더 이상 속 깊숙이 감춰둘 수 없어서 더 이상 혼자서만 간직할 수 없어서
세상 향해 고운 빛깔 뿜어내었다
반겨주는 이들 위해 활짝 웃었다
갈바람에 시린 가슴 달래주려고
파란 하늘 병풍에다 수를 놓았다 (오보영·시인, 충북 옥천 출생)

+ 단풍
아버지 무덤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어머니 이제 그만 가시자고 하자 이놈의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며 멀쩡한 잔디만 뜯어내신다. 정말 그러네요. 어머니 얼굴을 보니 단풍보다 더 붉게 물드신다. (이재봉·시인, 1945-)

+ 단풍나무
단풍나무, 붉게 물들고 있었지요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,
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날들 이어지더니 가을이 오고 말았지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나는 산에 올라 못되게도 단풍나무에게 다 뱉어내 버렸지요 내 부끄러운 마음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아, 단풍나무, 고만, 온몸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데요 내 낯빛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해질수록 가을산마다, 단풍나무 붉게붉게 물들고 있었지요 (김현주·시인, 전북 전주 출생)

+ 단풍
개마고원에 단풍 물들면 노고단에도 함께 물든다. 분계선 철조망 녹슬거나 말거나 삼천리 강산에 가을 물든다. (류근삼·시인, 1940-)

+ 단풍
맑은 계곡으로 단풍이 진다 온몸에 수천 개의 입술을 숨기고도 사내 하나 유혹하지 못했을까 하루종일 거울 앞에 앉아 빨간 립스틱을 지우는 길손다방 늙은 여자 볼 밑으로 투명한 물이 흐른다 부르다 만 슬픈 노래를 마저 부르려는 듯 그 여자 반쯤 지워진 입술을 부르르 비튼다 세상이 서둘러 단풍들게 한 그 여자 지우다 만 입술을 깊은 계곡으로 떨군다 (박성우·시인, 1971-)

+ 단풍과 수녀
저마다의 색깔로 하혈하는 가을 산 속 깊이 젖어드는 비 산을 적시다 회임을 위하여 저무는데 저 높은 곳 맺은 언약 땅에서는 잉태되지 못하는 공복 오래 묵은 지방을 태우는 원색의 고해성사 울긋불긋 피어나는가 하늘이 내려와 승화하는 신앙고백 가을에 기대어 실비처럼 울다 가 닿지 않는 곳으로 높아 가고 있다. (권성훈·시인, 1970-)

+ 단풍
맑은 계곡으로 단풍이 진다 온몸에 수천 개의 입술을 숨기고도 사내 하나 유혹하지 못했을까 하루종일 거울 앞에 앉아 빨간 립스틱을 지우는 길손다방 늙은 여자 볼 밑으로 투명한 물이 흐른다 부르다 만 슬픈 노래를 마저 부르려는 듯 그 여자 반쯤 지워진 입술을 부르르 비튼다 세상이 서둘러 단풍들게 한 그 여자 지우다 만 입술을 깊은 계곡으로 떨군다 (박성우·시인, 1971-)

+ 단풍
아버지 무덤 앞에서 떠날 줄 모르는 어머니 이제 그만 가시자고 하자 이놈의 잡초는 뽑아도 뽑아도 끝이 없다며 멀쩡한 잔디만 뜯어내신다. 정말 그러네요. 어머니 얼굴을 보니 단풍보다 더 붉게 물드신다. (이재봉·시인, 1945-)

+ 단풍나무 한 그루
너 보고 싶은 마음 눌러 죽여야겠다고 가을산 중턱에서 찬비를 맞네 오도 가도 못하고 주저앉지도 못하고 너하고 나 사이에 속수무책 내리는 빗소리 몸으로 받고 서 있는 동안 이것 봐, 이것 봐 몸이 벌겋게 달아오르네 단풍나무 혼자서 온몸 벌겋게 달아오르네 (안도현·시인, 1961-)

+ 단풍나무
단풍나무, 붉게 물들고 있었지요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다, 이렇게 사는 것이 아니었다 부끄러운 날들 이어지더니 가을이 오고 말았지요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던 나는 산에 올라 못되게도 단풍나무에게 다 뱉어내 버렸지요 내 부끄러운 마음 내려오다 뒤돌아보니 아, 단풍나무, 고만, 온몸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데요 내 낯빛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뻔뻔해질수록 가을산마다, 단풍나무 붉게붉게 물들고 있었지요 (김현주·시인, 전북 전주 출생)

+ 단풍
앞날이 순탄치 않아 혹독하게 몰아치리라 예감하고들 있어 분기탱천한 구월이 피를 토하는 거야 (임영준·시인, 부산 출생)

단풍의 이유
이 가을에 한 번이라도 타오르지 못하는 것은 불행하다 내내 가슴이 시퍼런 이는 불행하다
단풍잎들 일제히 입을 앙다문 채 사색이 되지만 불행하거나 불쌍하지 않다
단 한 번이라도 타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 너는 붉나무로 나는 단풍으로 온몸이 달아오를 줄 알기 때문이다
사랑도 그와 같아서 무작정 불을 지르고 볼 일이다
폭설이 내려 온몸이 얼고 얼다가 축축이 젖을 때까지 합장의 뼈마디에 번쩍 혼불이 일 때까지 (이원규·시인, 1962-)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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